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개최를 기념하여 세워진 에펠탑은 당시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타워였습니다!
이 타이틀을 빼앗긴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까지도 에펠탑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철의 여인’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이 되었고,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제치다
파리의 에펠탑이 탄생하기 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1,000피트(약 300미터) 높이의 탑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가 이 엄청난 업적을 먼저 이뤄냈어요.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을 위해 일하던 엔지니어 두 명이 처음 아이디어를 냈고,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진 프랑스 정부는 300m 높이의 사각형 바닥을 가진 철탑 설계 공모를 발주했습니다.
흉물스럽다고 혹평을 받다
탑의 받침이 완성되자, 에펠탑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붙은 듯 악의적인 비유를 쏟아냈습니다.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에펠탑을 ‘종루의 뼈대’라고 묘사했으며, 작가 레옹 블루아Léon Bloy는 ‘진정으로 비극적인 가로등’이라며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에펠탑은 만국박람회에서 방문객 200만명이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 모든 비판을 단숨에 잠재웠습니다.
수많은 기록 남기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에펠탑을 세우는 데 들어간 시간은 고작 2년 2개월 5일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건축 자재로는 철 7,300 톤, 페인트 60톤, 리벳 250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엽서의 조상
프랑스에서 제작된 첫 삽화 엽서의 앞면을 장식한 것은 바로 에펠탑의 초상화였습니다. 작가의 이름을 딴 ‘리보니(Libonis)’ 엽서는 우체국이 있던 에펠탑의 2층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초판으로 총 30만 부가 찍혔는데, 그때부터 프랑스 전역에 엽서 열풍이 불고 관련 상품이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라디오 덕분에 살아남다
임시 시설물이었던 에펠탑은 20년 후 철거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구스타브 에펠은 이 건축물의 과학적 쓰임새를 증명해냈고, 가까스로 철거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곳은 기상관측소와 공기역학 실험실로 사용되었으며, 최초의 방송국인 TSF 라디오 방송국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913년 이후에는 에펠탑에서 미국으로 전보를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까지
초기 방문객들은 1710개의 계단을 직접 올라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독특하게 설계되었으며, 그중 두 대거 아직까지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옷을 갈아입다
견고한 페인트가 없었다면 철로 만들어진 에펠탑은 그 수많은 세월을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펠탑이 지어진 이후 총 19번 도색이(수작업으로) 이루어졌으니 평균 7년마다 한 번씩 페인트칠을 새로 한 셈이네요.
세계 곳곳에
1894년 영국에 블랙풀 타워가 세워진 이래로, 러시아, 중국, 루마니아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에펠탑을 본뜬 구조물을 건설했는데 그중 라스베가스에 있는 에펠탑이 가장 유명합니다(높이 165m).
파리의 등대
매일 밤, 길이 80km의 광선이 마치 밤의 등대와 같이 파리 전체를 여전히 비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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